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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은 고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지역으로 역사가 약 2만년까지 올라간다. 이는 4차에 걸쳐 발굴한 신평 하가 후기 구석기 유물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임실관내 유물 산포지는 140여개소에 이르고 고대 무덤유적은 120여개에 이른다.
또한 신평 상가마을 저수지안벽 넓은 바위 위에 그려진 15개의 윷판을 비롯하여 지사 영천의 작은 입석에 새겨진 12개의 성혈(星穴), 오수 원동산의 성혈, 지사 계산리에 있는 20여개의 고인돌군(群)과 고인돌채석장(採石場), 덕치 사곡마을, 강진 필봉리와 부흥리, 신평 원천리와 상천리 그리고 청웅 구고리 양지마을의 고인돌 군, 물속에 잠긴 운암 사양리 일대의 고인돌 군(群)은 물론 오수, 성수, 신덕, 삼계면에도 여러 곳에 고인돌이 산재되어 있다.
1천년 전에 세워진 오수 의견비와 300여년전에 세워진 두류마을의 호랑이 바위, 년대를 알 수 없는 덕치 사곡마을의 남근석, 그리고 각 지역 곳곳에 세워져 있는 50여개소의 선돌은 옛 선인들의 생활문화유산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임실의 선사, 고대문화

우리나라에서 백제 때 지명을 그대로 쓰고 있는 곳이 임실군(任實郡)이다. 1400년 전 임실군은 백제의 임실군으로 불리었는데, 지금도 당시의 임실이라는 지명을 사용하고 있다. 어찌 보면 ‘임실任實’이라는 지명 속에 담긴 것처럼, 임실군은 일찍부터 사람들이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데 좋은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호남정맥(湖南正脈)이 서쪽과 북쪽의 자연 경계를 이루고 있고, 섬진강과 오수천이 남원시와 순창군의 행정 경계를 이룬다.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의 팔공산 서북쪽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진안군을 적시고 임실군 관촌면에 이르러서 오원강(烏院江)으로 불리다가 다시 신평면 원천리에서 부터 섬진강(蟾津江)이 시작되어 운암호(雲巖湖)를 이룬 다음 강진면과 덕치면을 지나 천담계곡으로 흐르다가 구담을 끝으로 순창군 동계면과 적성면으로 접어들면서 적성강(赤城江)으로 그 이름이 바뀐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백일 기도를 올린 성수산(聖壽山)에서 발원한 오수천(獒樹川)은 줄곧 서쪽으로 흐르다가 순창군 동계면 평남리에서 섬진강 본류에 합류한다. 섬진강 본류와 지류를 따라 임실분지와 신안분지, 청웅분지를 비롯하여 오수천 유역에는 임실군에서 가장 넓은 오수분지와 산서분지가 드넓게 펼쳐져있다.
임실군은 선사시대 이래로 줄곧 교통의 중심지를 이루었다. 전주와 남원 중간 지점에 위치한 지정학적인 이점과 호남정맥의 주요 관문들이 임실군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주를 중심으로 만경강 유역에서 임실군과 남원시 등 섬진강 유역으로 진출하려면 대부분 호남정맥의 관촌면 슬치(瑟峙)를 넘었다. 그리고 전주에서 삼천천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호남정맥의 막은댐을 넘어 고흥반도까지 이어지던 내륙 교통로도 임실군의 서쪽을 남북으로 관통한다.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치재를 넘어 운봉고원(雲峰高原)과 금남호남정맥의 자고개를 넘어 진안고원(鎭安高原)의 장수권으로 나아갈 때도 임실군을 거쳤다. 호남정맥의 가는정이를 경유하여 동진강 유역인 태인과 부안 일대로 진출할 경우에도 대부분 임실군을 경유하였다. 그만큼 임실군은 지정학적인 이점을 최대한 살려 일찍부터 내륙 교통망의 허브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리하여 임실군 일대에 그물조직처럼 잘 갖춰진 내륙 교통망이 교차하거나 통과하는 교통의 중심지는 일찍부터 거점지역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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